노동자 위해 한몸 불사른 전태일 대구 집, 기념관 거듭난다 [출처: 중앙일보] 노동자 위해 한몸 불사른 전태일 대구 집, 기…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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작성자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Hit 429회 작성일Date 19-09-18 11:04본문
16일 오후 대구 중구 남산동 2178-1번지. 좁은 골목 사이에 한옥 한 채가 자리하고 있다. 한옥 마루에선 노부부가 소반 하나를 사이에 두고 앉아 대화를 나누며 점심을 하고 있었다. 집은 언뜻 봐도 오랜 세월을 견뎌왔다는 걸 알 수 있었다. 방수포가 덮인 지붕에는 낡고 금 간 기왓장이 드러나 있었고, 벽에도 곳곳에 칠이 벗겨진 모습이었다. 이곳은 대구에서 태어난 전태일(1948~70) 열사가 서울에서 20년 가까이 살다 대구로 돌아와 1년여를 살았던 집이다. 1963년, 그의 나이 15세 때였다.
전태일 열사 2년여간 살았던 대구 중구 남산동 2178-1번지
시민들이 모은 기금으로 매입계약 체결…17일 체결식 열어
현 소유주 "전 열사 동생 부탁으로 8년간 이사 않고 머물러"
전태일 50주기 2020년 맞춰 매입 마치고 기념관 설립 예정
70년 11월 13일 22세 나이로 노동자들의 권리를 위해 분신한 노동운동가인 전 열사는 48년 8월 26일 대구 중구 남산동 50번지에서 태어났다. 그가 태어난 생가는 지금 도로가 돼 흔적이 남아있지 않다. 전 열사는 6세 때인 54년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무작정 상경하면 대구를 떠났다. 서울에서 남대문국민학교를 다니다 중퇴하고 62년 대구로 다시 내려와 큰집에서 더부살이하며 생계를 이어갔다.
전태일 열사 가족이 다함께 이 집에 살게 된 건 63년이다. 전 열사는 집 근처에 있는 청옥고등공민학교(현재 명덕초등학교)를 다녔다. 고등공민학교는 가정 형편으로 정규 교육을 받지 못한 학생들이 다녔던 학교다. 고(故) 조영래 변호사가 쓴 『전태일 평전』엔 전 열사가 대구에서 이 학교에 다니던 때를 ‘내 생애에서 가장 행복했던’ 시절로 꼽았다고 나온다.
하지만 행복도 잠시, 형편이 어려워지자 그해 12월 학교를 그만뒀다. 이듬해인 64년 초 어머니가 식모살이하러 서울로 떠났고, 전 열사도 막냇동생 순덕을 업고 어머니를 따라 서울로 올라갔다. 이후 전 열사는 서울 평화시장 의류제조회사 견습공, 구두닦이, 재봉사 등을 전전하며 일했다. 고향엔 다시 돌아오지 못했다.
지금 집 주인인 최용출(69)씨는 이 집에서 54년을 살았다고 한다. 전 열사가 집을 떠난 뒤 바로 이곳에서 살게 된 셈이지만, 전 열사나 그의 가족과는 만난 적이 없다. 워낙 낡아 이 집도 점점 살기 어려워지는 상황. 그는 어째서 이곳을 지키고 있었을까.
최씨는 “8년 전 이 집을 떠나 새집으로 이사를 하려고 했는데, 전태일 열사의 동생 전태삼(69)씨가 간곡하게 부탁을 하기에 불편함을 감수하고 계속 살았다. 전씨는 내가 떠나면 집이 허물어질 수 있다며 이사를 말렸다”며 “나도 역사적인 공간이 사라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끝내 집을 팔지 않고 살았다”고 말했다.
이곳은 앞으로 기념 공간으로 거듭날 전망이다. 전 열사의 삶을 기리기 위해 구성된 단체인 ‘(사)전태일의 친구들’이 17일 최용출씨 부부와 집 매매 계약을 체결하기로 하면서다. 오후 3시에 열리는 매입 계약 체결식에는 전태삼씨가 참석할 예정이다.
‘전태일의 친구들’은 지난 3월 창립 후 시민기금으로 1억원가량을 모금했다. 매입 계약금 10%을 치른 후 전 열사 50주기인 내년 6월까지 잔금을 모두 치러 최씨 집 매입을 마칠 예정이다. 집값은 총 5억원으로 알려졌다.
매입 후 이 집을 ‘대구 전태일 기념관’으로 꾸밀 계획이다. 구체적 계획은 아직 없지만, 기념관엔 전 열사가 살았던 당시의 모습을 재현하는 것은 물론 일부 시설을 노동인권센터, 노동교육공간으로 활용할 방침이다.
대구=김정석 기자
kim.jungseok@joongang.co.kr
[출처: 중앙일보] 노동자 위해 한몸 불사른 전태일 대구 집, 기념관 거듭난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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